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인상깊은.

[명 시] 황지우 - 뼈아픈 후회

슬프다
  내가 사랑한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
 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,
  그 징표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
  나에게 왔던 사람들,
  어딘가 몇군데는 부서진 채
  모두 떠났다
 
 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,
 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
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,
 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
 
  어떤 연애로도, 어떤 광기로도
  이 무시무시한 곳에 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
 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,
 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
 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
 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있다
 
 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
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
 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
 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
 
  젊은 시절,
 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
  나를 위한 헌신,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,
  그것도 파워랄까,
 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
 
 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.
  그 누구도 걸어들어 온 적 없는 나의 폐허
  다만,
 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
 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
 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, 기대하지 않는다
 
  [출처] 황지우 - 뼈아픈 후회